'아니야'

2006. 10. 12. 10:48 from Me, Myself, and I
남의 얘기를 듣다 보면 진단이 딱 나오지요? 다 듣기도 전에 먼저 “아니야, 그건 아니지”라는 말이 조건반사처럼 튀어 나옵니다. 내가 보기엔 분명히 틀린 일입니다.‘ 지엽적 문제이니 그냥 넘어가자’는 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는 말이 가장 듣기 싫습니다. 세상을 왜 이리 힘들게 사느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듣지만 나는 그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살이는 힘들지만 언젠가는 남들이 나를 인정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도‘아닙니다’라는 말을 하고야 맙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던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유전자가 이상돌연변이 후 피에 흐르고 있나 봅니다. 누가 옳은지 결론을 내려야 마음이 편해진다니까요. 그렇다면 당신은‘아니야’에 중독된 사람인지 모릅니다. 당신은 남들 김 새게 만드는 명수입니다. 이야기에 흥이 오르려고 하면“틀렸어, 그건 아니야”라며 훼방을 놓기 일쑤입니다. 마치 세상 모든 일을 자기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단정적으로 말을 합니다. 두괄식 어법의 1인자지요. 도대체 왜 그리도 성급하게‘아니’라고 결론을 내리는 거지요? 옳은 걸 옳다고 하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고요? 눈치는 있어서 욕먹는 것은 알지요. 사실 당신은 대화를 하는 게 아닙니다.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욕심이 너무 커요. ‘아니다’라고 우기는 것은 진실을 설파하기 위한 사명감이 아니라 자기방어를 위한 몸부림일 뿐이라고요. 사실 속내를 잘 들여다 보면‘목에 칼이 들어와도 내가 맞다’는 진리에 대한 확신 같은 건 없어요. 가끔 그런 당신을 보면 무슨 배짱으로 저렇게 끝까지 우기는 것인지 황당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야’가 입에 달린 당신은 모든 관계를 승패의 구도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네가 맞아”라고 인정을 하는 순간 결국 그에게 흡수당해 백기를 흔들고야 말 것 같습니다. 얇은 방어막이 무 너지는 순간 끝장이 날 것 같은 자기 확신 결핍이 그 불안의 원인이죠. 그러니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고 어떻게든 상대방을 자기 영역 안으로 끌어당기려고 합니다. 그 첫 포문이 바로 당신이 입에 달고 사는,‘ 아니야’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착각이 하나 있습니다. 생각보다 남들은 당신에게 관심이 없답니다. 다들 자기 먹고 살기 바쁘다고요. 각자 자기 세계가 있는 것이라고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랍니다. 취향의 차이를 받아들이면 작은 숨구멍이 열립니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때 당신 앞의 세상은 넓어집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어떻게든‘다름’을 자기 방식으로 고치려 하거나, 틀렸다고 단정을 지으려 합니다. 그래야 편해지거든요. ‘아니야’에 중독된 당신, 다름의 세계를 옳고 그름, 이기고 지는 것의 문제로만 보는 당신은 무대뽀, 꼴통입니다. 작은 한숨을 쉬며“그래 네가 맞아”라고 말하는 친구의 얼굴에서 냉소와 체념의 코드가 읽힐 겁니다. 자기만의 작은 세계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노력은 가상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 안에 갇혀버리고 말 것이라는 것, 이것이 꼴통의 운명이랍니다.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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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한 심정에서 쓴 글같애 보이는데,
나도 저런 면이 있지 않나 싶어서 아침 화장실에서 유심히 본 '조선일보 섹션' 에 올라온 글

Posted by chxngx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