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들!

2008. 12. 31. 13:17 from Mpls & St. Paul

요즘은 하루하루를 조용히 지내고 있습니다. 마침 딱히 불러주는 곳도, 부를 사람도 별로 없어서 - 그동안 방학땐 항상 돌아다녀서 몰랐는데, 가만히 트윈시티에 있으니 참 심심한 생활이네요 - 무료한 생활을 나름 즐기고 있습니다. 예전에 빡센 회사생활 중에, '아 한달정도만 어디 깊은 산속에서 책보고 운동하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이 딱 그거네요 ㅎㅎ 진짜로 책보고, 음악듣고, 영화보고, 운동하고 그러고 있습니다. (가끔 쇼핑도...) 혼자있는걸 안좋아하지만, 또 막상 즐기려고 하니까 나름의 재미가 있네요. 

오늘은 요 며칠간 본 영화들에 대해 애기하려 합니다. 딱히 요즘엔 다운받아서 볼 만한것도 마땅치가 않아서, 이리저리 뒤지다가 본 것들입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Last Tango in Paris)
[ LAST TANGO IN PARIS POSTER ]
- 야하고 변태적이고 외설적이라는 이유로도 유명한 70년대 영화입니다.제가 좋아하는 영화인 '마지막 황제'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로, '인간의 외로움을 그렸다' 는 설명에 동감이 가는 것도 없는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죄다 동감이 가지도 않네요. 주인공은 여관(호텔?) 주인인데, 부인의 정부도 함께 여관에 있었지요. 부인을 꽤 사랑했던 이 남편은 부인의 외도를 참기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꾹 참고 살아왔는데, 엉뚱하게 부인이 자살을 하고 맙니다. 그동안 남편은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대로 부인이 자살을 하자 세상의 부조리함을 못참고 폭주하게 됩니다. 사람간의 그 무엇도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그저 middle of nowhere에서 nobody로 살아가고 싶어지는 거지요. 이름도, 추억도, 인간관계도 모든 것이 부질없고 막 낭떠러지로 달려가는 뭐 그런 거랄까요. 그런 막장 행보에 비교적 군말없이 따라와 주는 젊은 여자에게 마지막에서야 마음을 열어보지만 그 순간 총알이 박히면서 끝나버립니다. 그리고 그 젊은 여자는 주인공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 버리게 됩니다. 어짜피 이름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니까 존재가 없다고 해도 뭐라 할 사람은 없겠지요.

뭐 대강 이런 식인데, 주인공인 '말론 브란도'는 항상 뭐라고 중얼거리거나 화내거나 둘 중의 하나의 모습이고, 중얼거릴땐 저게 불어인지 영어인지도 구분 안되고, 왜 모든 등장인물이 제정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상하게 나옵니다. 그 누구도 제대로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이 없네요. 중간에 자살한 부인의 정부와 말론 브란도가 얘기하는거 정도가 멀쩡해 보인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두 사람은 그다지 멀쩡할 사이는 아니지요. 제작 당시에 일부러 이슈가 되러고 만든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너에게 나를 보낸다' 는 장선우 감독의 영화가 있었지요. 비슷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 NO COUNTRY FOR OLD MEN POSTER ]
- '완벽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게 절절히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장면 하나, 대사 하나가 세밀한 계산 하에 만들어진 거 같네요. 그러한 '완전함에 대한 노력'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에 대한 가치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줄거리를 얘기해라 하면 의외로 간단한데 - 텍사스의 촌사람이 큰 돈을 줍습니다. 그 돈을 찾아다니는 살인청부없자가 이사람을 쫓아다닙니다. 이 사건을 쫓는 보안관은 사건 해결보다는 사건 해설을 뒤에서 하고 다닙니다. - 이게 다인듯 하네요. 하지만 장면마다의 내용은 훨씬 복잡합니다.
일단 '돈가방을 들고 튀는' 모스란 양반. 돈가방을 보는 그 순간 그는 이후에 일어날 복잡한 일들에 대해 대부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돈가방을 집어들지요. 그 상황에서 그는 그럴수밖에 없었고, 그래야 했고, 그러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동화책처럼 '이런 이상한 큰 돈을 주우면 큰 화를 당할꺼야. 모른척 하거나 경찰에 신고해야지' 같은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고, 그가 무슨 '운명론자'도 아닌듯 보이지만 그저 자기앞에 주어진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저런 게 진짜 인생의 모습이겠지요. 모스는 자신의 처한 상황을 매우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고, 나름 그 상황에 최선의 대처를 합니다. 그리고 결과는 아주 엉뚱한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도 역시, 진짜 인생의 모습이겠지요.
그다음 모스를 쫓는 겁나 웃기게 생긴 '안톤 쉬거' 라는 인물. 다크나이트의 조커에 약간 가려서 엄청난 이 캐릭터가 그다지 유명하지 않지만, 아주 흥미있는 캐릭터임은 분명합니다. 그는 무조건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원칙은 다름아닌 '동전던지기' 로 앞뒤면이 나옴에 따라 움직이는 건데, 세상일도 모두 그러한 절반의 '무의미한' 확률들로 이루어지며, 어짜피 모든 세상의 일들이 동전의 앞뒤면이라면 모든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부질없는 거고, 그렇다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도 없게 됩니다. 그는 칼같이 자신의 신념 혹은 믿음을 지키는 사람을 대변한다고나 할까요. 게다가 그는 거의 완벽한 살인청부업자입니다. 감정도 완벽히 제어하고, 신체적으로도 튼튼하니 흠잡을데가 없겠지요. 그다지 자신의 일을 즐기는 거 같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싫어하는 거 같지도 않습니다. 그저 신념(동전의 앞뒤면)에 찬 인물일 뿐이지요. 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한 마디 - '그는 유머감각이 없어'.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신념도 별 거 없다는걸 막판에 보여줍니다. 이쯤되면 이것도 나름 유머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마지막 보안관. 그는 이 사건을 해결해야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는 충분히 이 복잡한 사건을 꾀뚫는 지혜를 가지고 있지만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은퇴' 하는 거 뿐이였지요. 게다가 그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굉장히 무력해 보이거나, 혹은 염세주의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는 그다지 염세적이거나 시니컬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심한 남부 사투리를 쓰고 있는데, 놀라운 건 안톤 쉬거는 스페인 배우고 모스 부인은 스코틀랜드 배우랩니다.

파고(Fargo)
[ FARGO POSTER ]
- 대놓고 미네소타를 다룬 이 영화를 인제야 처음 봤네요. 유명한 영화긴 한데, 미네소타에 사는 저로써는 계속 킥킥거리면서 봤습니다. 뻥뻥 터지는 웃기는 영화는 아니지만 어쨌든 이 영화는 웃기려고 만든 영화임이 분명하네요. 살인이 계속 일어나지만 영화 어느 부분이건 전혀 진지하거나 심각하지가 않습니다. 이 영화가 1996년에 만들어진 영화라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미네아폴리스는 크게 변하진 않은거 같네요. 단지 거슬리는 게 있다면 사람들의 말투인데, 이상하게 oh yeah를 많이 얘기하고 이상한 Midwest 사투리를 쓰는데 전 그런 말투를 거의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Minnesota Nice를 보여주는 영화네요. 이동네 사는 사람이라면 아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인거 같습니다. 특히 날씨!


 

Posted by chxngx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