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보다가 퍼 온 거.
동거녀가 조건찾아 떠나는데 복수를 하고 싶다는 글이다. 내용은 별거 없고 제목만 자극적이다. 제목은 '1년6개월 동거해온 여친, 조건찾아 떠난대요' 언뜻 보면 여친이 돈이 궁해 조건만남(원조교제)를 하러 나간다는 거 같지만, 뭐 뻔하디 뻔한 내용이다. 내용을 좀 보면

Q 1년6개월 동안 동거했던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집을 장만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헤어지자는군요. 그러고는 요즘 열심히 선보러 다니는 중입니다. 전 ‘그저 그런’ 중소기업 회사원이고요, 여친(아직까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은 전문대 교수입니다. 여기까지는 흔하디흔한 연애 종결사지요. 그런데 제 마음이 자꾸만 흔들립니다. 이 여자가 나 아닌 남자와 결혼을 한다는 생각을 하면, 쪽팔리게도 본전 생각이 난다는 겁니다. 나랑 살 맞대고 부부처럼 1년을 넘게 살았는데, 좀더 안정된 생활을 위해 돈 좀 있는 놈을 골라 시집갈 생각을 하는 이 여자에게 진정 통쾌한 복수를 하고 싶은 생각이 새록새록 들면서 여러 방법을 궁리하게 된다는 겁니다. 덜컥 생겨버린 애를 지우러 간 기억을 떠올리면서, 낙태죄로 고발해 버릴까? 결혼 날짜 잡히면 남편될 남자 연락처를 알아내어 일 년 동안 동거하고 애까지 뗐다는 과거를 확 다 불어버릴까? 이런 생각들에 심란합니다. 뭔가 이 여자에게도 마음의 상처를 주고 싶다는 게 지금 저의 마음이라 … 쪽팔립니다. 팔릴 때 팔리더라도 지금은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제 자신이 참 비참합니다. 우문에 현답을 부탁드립니다.

A 정상적인 실연의 순서, ‘안 멋진’ 모습까지 보여줄 수 없다면 연애로 끝나야죠

축하드립니다. 지극히 정상적 수순으로 실연의 과정을 밟고 계신 겁니다. 한쪽의 슬픈 죽음이라는 특별한 사정을 빼고서는 남녀간의 이별은 늘 치졸하고 이기적이고 시큼털털합니다. 아름다운 이별 따위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지만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현실에선 정말 서로 사랑한다면 헤어질 일 없습니다. ‘지금도 사랑하지만’은 영화나 드라마나 대중가요의 세계에서나 만나면 충분합니다. 다시 말해 가장 자연스러운 이별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실망하고, 실망이 증오로 바뀌면서 서로 조롱하며 헤어지는 것입니다. 콤플렉스를 정면으로 다치면서 실연당한 분들은 거기에 프리미엄 얹혀 ‘과거 불기’ 등의 전형적 복수법을 망상하기도 하지요. 아시죠? 그런 복수 씨알도 안 먹힌다는 거. 그녀의 한때의 애틋했을, 하지만 지금은 부끄러운 ‘과거’는 당신이라는 사람이잖아요. 스스로를 부정하려니까 지금 비참한 거지. ‘이젠 다 끝났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만 남았습니다. 한 번 깨진 것은 결코 두 번 다시 곁으로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참고로 결혼은 나의 ‘그저 그런’ 모습을 얼마나 상대에게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다시 말해 ‘안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내 인생에서 부동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죠. 서로 초라한 모습을 보여서 질릴 것 같으면 그건 연애에서 끝내는 게 좋습니다. 일상을 ‘실망’이라는 형태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는 상대와 어떻게 같이 살겠습니까?


내용은 길지만 별 거 없다. 근데 왜 퍼왔나면, 요 밑에 달린 사족에 아주 공감을 하기 때문이시다.
위에건 볼 필요도 별로 없고, 본론은 지금 이것이시다.


P.S: 이참에 이쪽 ‘그녀들’ 좀 봐주시죠.

‘저는 삼 년 사귄 남자친구가 있는 서른 초반 여자입니다. 그는 저와 성격이 잘 맞고 참 좋은 사람이지만 조건적인 면, 즉 집안이나 학벌, 직업, 수입 면이 부족해서 솔직히 결혼이 망설여집니다. 저희 부모님들도 ‘사람이 좋다는 건 인정하지만 더 나은 조건의 남자’ 타령을 하시면서 자꾸 선보라고 하십니다. 이 남자친구는 저한테 지극정성이라 헤어지자는 말이 참 안 떨어지지만, 결혼 후 현실을 고려하면 불안해집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앞의 사연처럼 끝장 본 동거나 가슴 멍들 낙태 겪지 않아도 멀쩡히 지내다가 많이들 이러십니다.

언니들. 사랑이냐 현실이냐, 그거 중요치 않습니다. 개개인의 자유입니다. 어느 쪽을 택하는 것이 올바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 쪽도 ‘자율적으로’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독립적 의사결정이 어색한 것은 여태 그 나이 되도록 가치관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못해서 그렇습니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 뭘 필요로 하는지 스스로의 욕망에 무지하다 보니 우선순위가 모호해질 수밖에요. 자력으로 알려는 노력을 할 필요도 없는 타의적, 의존적 환경도 한몫 도와주니 자연스레 ‘내 사람’ ‘내 행복의 기준’을 알아보는 ‘감’과 ‘순발력’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점점 외부의 입김에 취약해지며 ‘남들이 내게 원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내주게 되지죠. 아무도 상처 안 받고 지극히 안전해 보입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리고 멈춰 서선 이렇게 말하지요. ‘그래, 난 그만큼 그를 사랑하지 않아서 이렇게 흔들리는 거야!’ 결론 참 쉽습니다. 아니, 사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누군가를 확 사랑해 보지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본인 스스로를 끔찍이 이기적으로 존중하고 사랑한 적도 없었을 터이니 가능할 리 없습니다. 흔들리지 않을 만큼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평생 한 번 있기라도 했을까요? 그 후로라도 있을 수나 있을까요? 그래 놓고선 제발 먼 훗날 당신 딸이 결혼할 무렵 되서 ‘엄마는 그때 (사랑을 택했든 현실을 택했든) 너무 순진했어, 내 딸만은 현명한 선택을 하렴’이라며 엄연한 남의 인생에 뒤늦게나마 의사결정 한번 해 보려고 이리저리 휘젓지나 마십시오. 비극의 대물림입니다. 가장 사적인 영역에서 정신이 자유롭지 못한데, 골드미스니 우먼파워니 그게 다 뭡니까. 따지고 보면 ‘사랑이냐 현실이냐’도 거 말 되게 이상합니다. 사랑이 그나마 우리를 구제하는 유일한 현실이 아니던가요. 왜 이렇게 흥분하냐고요? 이 사연, 꼭 가을이 죽음 같은 어두움으로 깊어져 갈 때 제가 가장 지겹도록 받는 ‘나약한’ 사연이기 때문입니다.

임경선/칼럼니스트


비단 여자들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 나이 처먹고도 아무런 판단의 능력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거다. 그게 연애건, 직장이건, 가정사이건, 경제문제건, 진로문제건 간에.
독립심이 필요없도록 키워주신 분들을 탓하기 이전에 무섭도록 한심한 본인의 무능력부터 자책해야 하겠지만, 그정도 자책을 할 정도라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겠다.

지금도 '모르겠다, 어렵다, 운명에 맡기겠다, 헷갈린다' 를 입에 달고 사는 젊은 친구들은 여전히 많다.
내가 잘난건 없지만, 내가 자신있게 얘기하는데 그들은 왠만한 일반인보다 훨씬 무시당할 만 하다.
20대 초반에도 immature하게 보일만한 고민을 서른 다되서까지 쪽팔림 하나 없이 해대는 건 똑바른 정신이 아니니까 하는 거다. 남자건 여자건 간에.

 

Posted by chxngx :